과거의 오늘

과거의 오늘, 세계속 6월 4일에는 무슨일이?

jh0711 2025. 6. 4. 15:2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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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“살리어 왕조의 문을 연 황제의 마지막 날” 1039년, 신성로마황제 콘라드 2세 사망 이야기


 

사건 개요

  • 날짜: 1039년 6월 4일
  • 사망자: 콘라드 2세 (Conrad II)
  • 직위: 신성로마제국 황제, 독일 왕, 이탈리아 왕, 부르고뉴 왕
  • 재위 기간: 독일 왕(1024년1039년), 황제(1027년1039년)
  • 사망 장소: 독일 트리어 인근 유행성 질병으로 추정
  • 후계자: 아들 하인리히 3세

콘라드 2세는 누구인가?

살리어 왕조(Salian dynasty)의 창건자

  • 오토 왕조(작센 왕조)가 단절된 후, 1024년 독일 왕에 선출됨
  • 살리어 왕조는 이후 약 100년간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함

신성로마황제 대관

  • 1027년 로마에서 교황 요한 19세에게 황제로 대관
  • 신성로마제국의 전통을 계승하며 제국 권위를 강화함

업적과 정치

3왕국 통합

  • 콘라드 2세는 독일, 이탈리아, 부르고뉴를 모두 통치한 첫 군주
  • 이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적 기틀을 마련

법과 토지 제도 개편

  • 귀족과 교회의 권한을 조율하며 왕권 강화
  • 농민층과 교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봉건적 질서 정비

외교와 군사

  • 폴란드, 헝가리 등 동유럽과의 외교 강화
  • 반란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며 제국 통합 유지

사망과 영향

  • 1039년 6월 4일, 병으로 사망
  • 황제로서의 리더십과 안정된 통치를 인정받으며 평화로운 권력 승계
  • 그의 아들 하인리히 3세는 더욱 강력한 황제 권력을 행사함

역사적 의의

  • 콘라드 2세는 중세 유럽에서 제국 체제의 기반을 정비한 군주
  • 살리어 왕조의 안정적 출발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데 기여
  • 특히 교황과의 협력과 견제, 왕권 강화를 모두 고려한 균형 잡힌 통치자로 평가받음

콘라드 2세는 칼이 아닌 질서로 제국을 다스린 황제였고,
그의 죽음은 중세 유럽에 하나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.


2. “하늘을 향한 첫 도전” 1783년,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비행 시연


사건 개요

  • 날짜: 1783년 6월 4일
  • 장소: 프랑스 안노네(Annonay)
  • 시연자: 몽골피에 형제 (조제프 몽골피에 & 에티엔 몽골피에)
  • 내용: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중에 떠오른 열기구의 성공적 시연
  • 비행 시간: 약 10분간, 고도 1.6km까지 상승
  • 탑승체: 비인간 (무인 열기구 시연)
  • 의의: 인류의 첫 비행 장치의 성공적 공개

몽골피에 형제는 누구인가?

  • 프랑스 남부 출신 종이 제조업자 집안의 형제
  • 조제프(형): 공기역학과 열에 관심
  • 에티엔(동생): 구조물 설계 및 기계 이해도 탁월
  • 두 형제는 "가열된 공기가 가벼워진다"는 원리를 응용해
    ‘뜨거운 공기로 공중에 뜨는 종이풍선’을 개발

첫 시연의 내용

  • 종이와 천으로 만든 거대한 열기구에 불을 붙여 내부 공기를 가열
  • 공기는 팽창하며 열기구를 들어 올림
  • 이 열기구는 10분간 약 2km 거리, 1.6km 높이까지 상승
  • 시연 장면을 본 관중들은 충격과 환호
  •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왕실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킴

이후의 발전

1783년 9월

  • 동물(양, 오리, 수탉)을 태운 시험 비행 성공

1783년 11월

  • 사람을 태운 최초의 유인 비행 성공 (파리)
  • 승객: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프랑수아 로랑

항공역사에 미친 영향

  • 이후 열기구는 기상 관측, 군사 정찰, 레저 활동 등에 활용
  • 라이트 형제 이전, 비행 가능성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제공

역사적 의의

  • 인류 최초의 ‘하늘을 향한 실험’
  • 열기구는 날개 없이 떠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
    과학과 대중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사건
  • 항공학·비행학의 서막을 연 결정적 계기

1783년, 몽골피에 형제는 종이와 불로 하늘을 만들었고,
그 하늘 위에 인간의 꿈이 처음으로 떠올랐다.


3. “생명으로 외친 한 표의 권리” 1913년, 에밀리 데이비슨과 여성 참정권의 외침


사건 개요

  • 날짜: 1913년 6월 4일
  • 장소: 영국, 엡섬 더비(Epsom Derby) 경마장
  • 주인공: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 (Emily Wilding Davison)
  • 소속: 영국 여성 참정권 단체 ‘여성사회정치연합(WSPU)’
  • 사건: 경주 중이던 조지 5세 국왕의 말 앞에 뛰어들어 치명적 부상
  • 결과: 사건 4일 후 사망
  • 당시 나이: 40세

그녀는 누구였을까?

  • 옥스퍼드 출신 고학력 여성, 교사이자 작가
  • 여성 참정권 운동의 급진적 활동가
  • 다수의 체포와 단식 투쟁, 감옥 내 학대에도 불복
  • 당시 WSPU는 '폭력 없는 저항'을 넘어 직접 행동 전술을 도입 중

더비 경마장의 충격적인 장면

  •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국 왕실 대표 스포츠 행사
  • 에밀리는 국왕의 경주마 ‘애너마’가 달리는 코스에 뛰어듦
  • 말과 충돌하며 즉시 의식을 잃고, 4일 후 병원에서 사망
  • 그녀가 의도적으로 순교했는지, 아니면 국기(여성 참정권 깃발)를 말에 매달려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음

장례식과 반향

  • 런던에서 열린 장례식은 수천 명의 여성참정권 지지자들이 거리 행진
  • 에밀리의 관 위에는 ‘여성에게 투표권을!’이라는 구호가 놓였음
  • 일부 언론은 "과격하다"고 비판했지만, 많은 이들은 그녀를 영웅으로 기억

여성 참정권 운동에 끼친 영향

  • 그녀의 죽음은 영국 사회에 여성 참정권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계기
  •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의 산업 참여가 증가하며
    → 1918년,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 부여
    → 1928년, 21세 이상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 확대

에밀리 데이비슨은 말의 앞에 몸을 던졌지만,
그 몸짓은 한 세기를 울린 자유의 외침이 되었다.


 

4. “침묵은 깨지고, 여성의 손에 투표가 주어졌다” 1919년, 미국 상원의 여성 참정권 수정헌법 승인


사건 개요

  • 날짜: 1919년 6월 4일
  • 기관: 미국 상원 (U.S. Senate)
  • 의결 내용: 미국 헌법 수정 제19조(Ammendment XIX) 통과 승인
  • 핵심 조항:
  • “미합중국이나 어떤 주(州)도 성별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부인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.”
  • 이후 절차: 3분의 2 이상의 주에서 비준 → 1920년 8월 18일 정식 발효

역사적 배경

투쟁의 시작

  • 1848년 세네카 폴즈 여성권리대회에서 수잔 B. 앤서니, 엘리자베스 스탠턴 등이 최초로 여성 참정권 요구
  • 이후 약 70년간의 헌법 개정 운동 지속

격렬한 반대와 지연

  • 남부 보수 세력과 일부 종교단체들의 반대
  • “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”는 구시대적 고정관념
  • 참정권 운동가들은 단식투쟁, 거리행진, 체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

1919년 상원의 승인, 왜 중요했나?

  • 이미 1919년 5월 21일 하원은 통과
  • 그러나 상원은 1차 시도에서 부결됨 → 6월 4일 재투표로 극적으로 통과
  • 총 56대 25로 가결 (필요 과반 확보)
  • 상원의 통과는 헌법 개정을 향한 가장 큰 정치적 관문 돌파

여성 참정권의 확산

  • 1920년 8월, 테네시주가 마지막 비준 → 수정헌법 제19조 발효
  • 약 2천만 명의 미국 여성에게 공식적인 투표권 부여
  • 이후 뉴질랜드, 영국, 캐나다, 독일 등 세계 각국으로 참정권 물결 확산

세계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

  •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변화는 전 세계 여론에 충격
  • 여성의 사회·정치적 역할 확대 계기
  • 오늘날에도 투표권의 상징적 의미로 자주 회자됨

1919년 6월 4일, 미국 상원은
여성의 침묵 대신, 그들의 투표를 선택했다.


 

이상으로 과거의 6월 4일 이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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