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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“살리어 왕조의 문을 연 황제의 마지막 날” 1039년, 신성로마황제 콘라드 2세 사망 이야기

사건 개요
- 날짜: 1039년 6월 4일
- 사망자: 콘라드 2세 (Conrad II)
- 직위: 신성로마제국 황제, 독일 왕, 이탈리아 왕, 부르고뉴 왕
- 재위 기간: 독일 왕(1024년
1039년), 황제(1027년1039년) - 사망 장소: 독일 트리어 인근 유행성 질병으로 추정
- 후계자: 아들 하인리히 3세
콘라드 2세는 누구인가?
살리어 왕조(Salian dynasty)의 창건자
- 오토 왕조(작센 왕조)가 단절된 후, 1024년 독일 왕에 선출됨
- 살리어 왕조는 이후 약 100년간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함
신성로마황제 대관
- 1027년 로마에서 교황 요한 19세에게 황제로 대관
- 신성로마제국의 전통을 계승하며 제국 권위를 강화함
업적과 정치
3왕국 통합
- 콘라드 2세는 독일, 이탈리아, 부르고뉴를 모두 통치한 첫 군주
- 이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적 기틀을 마련함
법과 토지 제도 개편
- 귀족과 교회의 권한을 조율하며 왕권 강화
- 농민층과 교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봉건적 질서 정비
외교와 군사
- 폴란드, 헝가리 등 동유럽과의 외교 강화
- 반란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며 제국 통합 유지
사망과 영향
- 1039년 6월 4일, 병으로 사망
- 황제로서의 리더십과 안정된 통치를 인정받으며 평화로운 권력 승계
- 그의 아들 하인리히 3세는 더욱 강력한 황제 권력을 행사함
역사적 의의
- 콘라드 2세는 중세 유럽에서 제국 체제의 기반을 정비한 군주
- 살리어 왕조의 안정적 출발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데 기여
- 특히 교황과의 협력과 견제, 왕권 강화를 모두 고려한 균형 잡힌 통치자로 평가받음
콘라드 2세는 칼이 아닌 질서로 제국을 다스린 황제였고,
그의 죽음은 중세 유럽에 하나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.
2. “하늘을 향한 첫 도전” 1783년,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비행 시연

사건 개요
- 날짜: 1783년 6월 4일
- 장소: 프랑스 안노네(Annonay)
- 시연자: 몽골피에 형제 (조제프 몽골피에 & 에티엔 몽골피에)
- 내용: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중에 떠오른 열기구의 성공적 시연
- 비행 시간: 약 10분간, 고도 1.6km까지 상승
- 탑승체: 비인간 (무인 열기구 시연)
- 의의: 인류의 첫 비행 장치의 성공적 공개
몽골피에 형제는 누구인가?
- 프랑스 남부 출신 종이 제조업자 집안의 형제
- 조제프(형): 공기역학과 열에 관심
- 에티엔(동생): 구조물 설계 및 기계 이해도 탁월
- 두 형제는 "가열된 공기가 가벼워진다"는 원리를 응용해
‘뜨거운 공기로 공중에 뜨는 종이풍선’을 개발
첫 시연의 내용
- 종이와 천으로 만든 거대한 열기구에 불을 붙여 내부 공기를 가열
- 공기는 팽창하며 열기구를 들어 올림
- 이 열기구는 10분간 약 2km 거리, 1.6km 높이까지 상승
- 시연 장면을 본 관중들은 충격과 환호
-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왕실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킴
이후의 발전
1783년 9월
- 동물(양, 오리, 수탉)을 태운 시험 비행 성공
1783년 11월
- 사람을 태운 최초의 유인 비행 성공 (파리)
- 승객: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프랑수아 로랑
항공역사에 미친 영향
- 이후 열기구는 기상 관측, 군사 정찰, 레저 활동 등에 활용
- 라이트 형제 이전, 비행 가능성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제공
역사적 의의
- 인류 최초의 ‘하늘을 향한 실험’
- 열기구는 날개 없이 떠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
과학과 대중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사건 - 항공학·비행학의 서막을 연 결정적 계기
1783년, 몽골피에 형제는 종이와 불로 하늘을 만들었고,
그 하늘 위에 인간의 꿈이 처음으로 떠올랐다.
3. “생명으로 외친 한 표의 권리” 1913년, 에밀리 데이비슨과 여성 참정권의 외침

사건 개요
- 날짜: 1913년 6월 4일
- 장소: 영국, 엡섬 더비(Epsom Derby) 경마장
- 주인공: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 (Emily Wilding Davison)
- 소속: 영국 여성 참정권 단체 ‘여성사회정치연합(WSPU)’
- 사건: 경주 중이던 조지 5세 국왕의 말 앞에 뛰어들어 치명적 부상
- 결과: 사건 4일 후 사망
- 당시 나이: 40세
그녀는 누구였을까?
- 옥스퍼드 출신 고학력 여성, 교사이자 작가
- 여성 참정권 운동의 급진적 활동가
- 다수의 체포와 단식 투쟁, 감옥 내 학대에도 불복
- 당시 WSPU는 '폭력 없는 저항'을 넘어 직접 행동 전술을 도입 중
더비 경마장의 충격적인 장면
-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국 왕실 대표 스포츠 행사
- 에밀리는 국왕의 경주마 ‘애너마’가 달리는 코스에 뛰어듦
- 말과 충돌하며 즉시 의식을 잃고, 4일 후 병원에서 사망
- 그녀가 의도적으로 순교했는지, 아니면 국기(여성 참정권 깃발)를 말에 매달려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음
장례식과 반향
- 런던에서 열린 장례식은 수천 명의 여성참정권 지지자들이 거리 행진
- 에밀리의 관 위에는 ‘여성에게 투표권을!’이라는 구호가 놓였음
- 일부 언론은 "과격하다"고 비판했지만, 많은 이들은 그녀를 영웅으로 기억
여성 참정권 운동에 끼친 영향
- 그녀의 죽음은 영국 사회에 여성 참정권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계기
-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의 산업 참여가 증가하며
→ 1918년,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 부여
→ 1928년, 21세 이상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 확대
에밀리 데이비슨은 말의 앞에 몸을 던졌지만,
그 몸짓은 한 세기를 울린 자유의 외침이 되었다.
4. “침묵은 깨지고, 여성의 손에 투표가 주어졌다” 1919년, 미국 상원의 여성 참정권 수정헌법 승인
사건 개요
- 날짜: 1919년 6월 4일
- 기관: 미국 상원 (U.S. Senate)
- 의결 내용: 미국 헌법 수정 제19조(Ammendment XIX) 통과 승인
- 핵심 조항:
- “미합중국이나 어떤 주(州)도 성별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부인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.”
- 이후 절차: 3분의 2 이상의 주에서 비준 → 1920년 8월 18일 정식 발효
역사적 배경
투쟁의 시작
- 1848년 세네카 폴즈 여성권리대회에서 수잔 B. 앤서니, 엘리자베스 스탠턴 등이 최초로 여성 참정권 요구
- 이후 약 70년간의 헌법 개정 운동 지속
격렬한 반대와 지연
- 남부 보수 세력과 일부 종교단체들의 반대
- “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”는 구시대적 고정관념
- 참정권 운동가들은 단식투쟁, 거리행진, 체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
1919년 상원의 승인, 왜 중요했나?
- 이미 1919년 5월 21일 하원은 통과
- 그러나 상원은 1차 시도에서 부결됨 → 6월 4일 재투표로 극적으로 통과
- 총 56대 25로 가결 (필요 과반 확보)
- 상원의 통과는 헌법 개정을 향한 가장 큰 정치적 관문 돌파
여성 참정권의 확산
- 1920년 8월, 테네시주가 마지막 비준 → 수정헌법 제19조 발효
- 약 2천만 명의 미국 여성에게 공식적인 투표권 부여
- 이후 뉴질랜드, 영국, 캐나다, 독일 등 세계 각국으로 참정권 물결 확산
세계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
-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변화는 전 세계 여론에 충격
- 여성의 사회·정치적 역할 확대 계기
- 오늘날에도 투표권의 상징적 의미로 자주 회자됨
1919년 6월 4일, 미국 상원은
여성의 침묵 대신, 그들의 투표를 선택했다.
이상으로 과거의 6월 4일 이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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